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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08 11:16
2016년 7월 3일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567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신 16:9-12, 마 5:6]

우리가 지금 지키고 있는 “맥추감사주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킨 후 첫 안식일에서부터 일곱 주일(7주)이 지난 후 첫 날이므로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수확을 얻을 때에 밀과 보리를 거두는 시기였기에 ‘밀(보리) 추수 축제일’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 “맥추감사절”은 가장 처음에 추수한 밀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이지요. 우리가 지키는 “맥추감사주일”은 한 해의 절반을 은혜 가운데 잘 보내게 하심을 ‘감사’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신16:9]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출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맥추절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맥추절’은 봄작물 추수에 대한 ‘감사제’이기 때문에 참으로 감사한 것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때는 ‘배부름’이 있고 ‘만족’이 있고 ‘감격’이 있습니다. 만약에 봄에 수확(추수)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참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苦痛)을 겪게 될 것입니다. 가뜩이나 힘겹게 겨울을 났는데 봄에 양식이 없다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1. 맥추절에는 배부름이 있습니다. 신약성경 본문인 [마5:6]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우리가 받는 복(福) 가운데 하나가 ‘배부름’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배고픈 시기를 참고 지난 자(者)에게 주어진 배부름’이니 말 그대로 살 것 같은 ‘배부름’이지요. 이렇게 놓고 보니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것이 그 자체가 복(福)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 이 ‘배부름이 무엇일까?’입니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경제적으로 넉넉해지고, 삶의 여러 문제가 해결되어지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도 ‘배부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경제적 궁핍,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해서도 안된다는 것이지요. 그런 어려움이 우리에게 있다고 해서 결코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감사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다윗이 도망자 신세(정치 망명자)로 광야를 전전하면서 배가 고팠을 때가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어려움은 계속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힘들어져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상태에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기름부음을 받은 이스라엘의 왕이며, 하나님의 신실한 종입니다. 다만 다윗은 그 시기에 연단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가 이르게 되면 그 ‘배고픔’과 ‘어려움’은 끝이 나고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되어 배부르게 될 것입니다. 자신만 배부르지 않고 온 백성들을 배부르게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윗에게 있어 광야 시절의 배고픔은 결코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고후11:27]에서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목마름’과 ‘굶주림’이 자발적인 금식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감옥에 갇혀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면 그렇게 사는 사도 바울은 불행한 사람입니까? 복이 없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 가난해지신 예수님처럼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스스로 목마름과 배고픔을 자청한 사람입니다. 그는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기쁨으로 찬송을 불렀던 것처럼, 목마름과 배고픔 속에서도 감사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여러분, 누가 그를 불쌍하다고 말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렇게 산 자신을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처럼 ‘배부름’은 단지 ‘육신의 배부름’과 ‘만족’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배가 불러도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면 이 땅에서의 배부름은 참 행복이 결코 아닙니다. 배가 고프고 목말라도 하나님의 손에 있다면 그것은 ‘참 행복’입니다.
2. 의에 주리고 목마름으로 배부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서 ‘육적인 배부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배부름’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육적으로 굶주리고 목마르다가 왕이 되어 배부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윗이 단지 육적인 배부름의 상태에서 머무른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는 영적인 배부름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보세요, 그 유명한 [시23:1]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상(床)으로 배부르고 하나님께서 채우신 잔(盞)으로 흡족했습니다. 그런데 그 상과 잔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런 의미의 배부름과 흡족함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혼의 만족’이며, ‘영원한 만족’입니다.
예수님은 [요10:27-28]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다윗이 누린 ‘진정한 배부름’은 바로  ‘영생’이었습니다. 영원히 멸망치 않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런 복(福)은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그 복을 누린다고 했습니다. ‘맥추감사절’에 ‘누가 진정한 배부름을 경험하고, 누가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경험하느냐?’ 그렇습니다. 본문 말씀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그러면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선 세상적인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요4:13]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라는 말씀처럼, 그 만족과 행복은 금방 바닥이 납니다. 왜냐하면 터진 웅덩이이기 때문입니다. 금방 배가 고픕니다. 금방 목이 마릅니다.
여러분, 그러니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평생을 그렇게 사셨습니다.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우리)은 당연히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의(義)를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예수님처럼, 어떻게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나에 몫에 태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다윗이 [시63:1]에서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망하나이다”라고 소원한 것처럼,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시63:3]에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는 고백처럼, 늘 찬양과 기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의에 주리고 목마름”으로 ‘배부름의 복’이 있는 ‘복된 맥추감사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