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회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작성일 : 16-07-01 12:07
2016년 6월 26일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473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Where is your faith?)
욥 23:10-17, 눅 8:22-25

그리스도인들, 즉 ‘성도(聖徒)’는 무엇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능력’을 증명 할 수 있습니까? 한 예로, 올림픽 선수들이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기 위해서 4년간 쉼없이 인내하면서 엄청난 훈련(노력)을 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유혹(誘惑)과 시험(試驗)을 당할 때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물리쳐 이김으로 성도의 능력을 인정받게 되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배에 올랐습니다. 제자들 중에는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 잔뼈가 굵은 이들이 있어서 예수님을 모시고 갈릴리를 건너는 일은 아주 자신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이 생각했던 대로 그렇게 풀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배에 타시자마자 곧바로 잠이 드셨고 제자들은 멋지게 배를 운행하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은 글렀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강 건너편까지 예수님이 잠에서 깨지 않으시고 편안히 주무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마저도 글렀습니다. 광풍이 불기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갈릴리’는 해수면보다 700피트(약200미터)나 낮은 반면, 주변에는 높은 산들이 있어 ‘갈릴리’에서만 부는 독특한 ‘국지풍(局地風)’이 있다고 합니다. 갈릴리 북쪽에 있는 ‘헐몬산’에서 내리부는 찬바람이 호수의 따뜻한 공기와 만나면서 갑자기 광풍(狂風)으로 바뀌어 버리기 때문이지요. 바로 그런 바람이 이때 불어 닥치기 시작했는데 그런데 그 ‘정도’가 예전보다 더 심했던 거지요. 오죽했으면 ‘강풍’(gale) 정도가 아니라 아예 ‘광풍’(fierce gale/사나운 바람)이라고 하였을까요. 그러니 갈릴리에서 잔뼈가 굵은 제자들도 더 이상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배 안에 물이 찼고, 예수님은 여전히 주무시고 있고, 이젠 안전하게 강을 건너는 것은 고사하고 ‘죽음의 공포’마저 든 것입니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면서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고 난리를 피웠습니다. 잠에서 깨신 예수님은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물결이 잔잔해졌습니다. 이렇게 바람과 물결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Where is your faith?)[눅8:25]고 책망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며 명령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그리고 그 명령에 바람과 바다가 순종하는 것을 보고, 두려움과 놀라움에 빠졌습니다. 이 본문의 사건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딱 하나(한마디)를 물으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Where is your faith?)[눅8:25] 이 말씀은 제자들이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지적(指摘)이며 책망(責望)이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것은 단지 제자들만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을 제대로 가지고 있으면 뭔가 다른 모습을 보일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오늘 본문의 제자들과 같은 모습을 우리도 [역시] 보일 때가 많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Where is your faith?)[눅8:25]고 물으신 ‘주님의 음성’에 대해서 대답 할 사람은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1. ‘믿음’은 시련의 때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항상 함께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보다는 ‘제자들의 믿음’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내려놓은 채 전적(全的)으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눅8:25]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믿음이 더 낫다는 말을 하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오히려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에 대한 칭찬을 들은 사람들을 보면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죄인(罪人)으로 여겨지는 여인들, 유대인들이 멀리하는 이방인들 등, 늘 의외(意外)의 사람들이 믿음에 대한 칭찬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평소에는 잘 믿는 것 같았는데 ‘광풍(fierce gale)’이라는 ‘위기의 상황’이 주어지자 아무런 ‘믿음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참된 믿음’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시련’을 만나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 본문의 인물인 욥의 모습을 보십시오. [욥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온전한 믿음’으로 ‘시련을 이기는 믿음’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능력’이 입증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예수님에 대해서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구약성경 욥기서에 나오는 ‘욥의 삶’을 보면 그에게 엄청난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그는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라고 [욥1:1b]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족함이 없이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에게 엄청난(감당키 어려운)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모든 것(물질 자녀 아내 친구 건강)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는 시련을 당할 때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이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1) 예수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입니다. [눅8:25]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그들은 예수님께서 바람과 물을 꾸짖으시는 걸 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멈추고 물(파도)이 잔잔해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강한 바람’과 ‘거친 파도’가 멈춘 후에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왜요? 전에 보지 못했던 광경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줄 알고 따랐을까요?’ 저들은 이스라엘이 당하는 학대와 압제에서 해방되는 것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그런 메시야로 따랐던 것이지요. 제자들은 메시아에 대해서 잘못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그 참혹한 십자가(절망의 십자가)를 지시리라곤 전혀 생각을 못했습니다. 저들은 입으로 하나님을 수도 없이 이야기했지만 눈은 결코 하늘에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저들의 눈은 여전히 땅을 향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를 군사적인 또는 정치적인 임금(왕) 정도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가?’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예수님이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계셔서 나를 죄악(罪惡)에서 구원(救援)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2) 바른 믿음에 있어 성도가 준비해야 할 또 하나는, 자신의 사명입니다. 예수님과 관련하여 나는 어떤 부르심을 받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이 분명한 사람은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의 흔들리는 믿음 없는 모습을 결코 보이지 않을 겁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긴 했어도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 자들인지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이런 일을 만나면 여지없이 흔들렸던 것이지요. ‘예수님을 바로 믿는 사람’은 자신이 주님께로부터 무슨 일을 하도록 부름 받았는지를 압니다. 그리고 그 일이 마칠 때가 되었는지를 역시 잘 압니다. 그러니 아직 그 일을 마칠 때가 아니라면 주님께서 자신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인도해 주실 것에 대한 믿음 또한 당연히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이게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런 믿음이 어디 있냐?”고 주님은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묻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