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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10 14:15
2016년 6월 5일 "이곳은 빈들이요(This is remote place=desert)"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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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빈들이요(This is remote place=desert)
삼하 7:14-17, 막 6:30-44, vgl.엡 2:11-22
오늘 신약성경 본문 말씀 중에 영어 성경에는 “remote place”, 즉 “빈들”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이 없는 세상’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주(主)가 되시는 예수님을 인정치 않고, 예수님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의 세계를 말합니다. 이 ‘빈들’에는 먹을 것도 없거니와 소망이나 기쁨조차 없는 황량한 들판을 말합니다. 날은 저물어서 어두움이 깃들고, 괴괴한 들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두려움을 가중시키는 그런 ‘흑암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바로 ‘빈들’과 같은 세상입니다. 우리의 ‘내면세계’가 바로 ‘빈들’과 같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내면세계’가 이러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를 애써 외면한 채 세상 즐거움에 탐닉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먹을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은 좋은 세상입니다. 그래서(물질적으로 풍부해서) 굳이 진지하게 인생 문제를 놓고 고민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생명줄이 끊어지리라’는 것을 조금은 예상은 하고 있지만 당장 지금은 그저 즐겁게 지내기를 원하고 그것이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면세계’에 대한 관심을 외면한 채 세상 일로 바쁘고 즐기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자연히 ‘내면세계’ 나아가 ‘영혼세계’는 날로 황폐하게 되기 마련이지요. 겉보기에는 번지르한 모습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아무 것도 없는 빈껍데기 같은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막6:30-44] 말씀은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막6:34]에 ‘목자 없는 양처럼 생각하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먹을 것을 공급하셨던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영(靈)과 육(肉)의 양식’을 다 함께 먹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순서는 분명히 있지요. ‘영의 양식’이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먼저 구해야 할 것은 ‘육의 양식’이 아니라 ‘영의 양식’임을 본문은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이냐?’ 하는 ‘생(生)의 목적(目的)’부터 분명히 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지요. ‘목적의식 없이 사는 인생’을 성경에서는 ‘버려진 인생’ ‘하나님을 등진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떠나 아무 소망 없이 사는 인생’을 말합니다. 구약성경 본문의 인물인 다윗은 젊었을 때부터 이미 ‘삶의 목표’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었기에 흔들림 없는 인생을 살아 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 여러 시련과 환난이 있었지만, 목표가 분명한 그에게는 그러한 고통이 아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피조물 된 인간이 가져야 할 인생의 목표임을 그는(다윗은) 알고 있었기에 그는 하나님 안에서 살려고 애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하나님께로부터 복된 약속의 말씀을 들으며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오늘의 구약성경 본문 말씀이 있는 [삼하7장]을 보면, 그것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다윗 편이 되어서 그가 무엇을 하든지 잘되게 도와주었다고 했습니다.[삼하7:9] ② 그리고 그 이름을 빛나게 해 주었다고 했습니다.[삼하7:9] ③ 뿐만 아니라, 악한 사람들로부터 억압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삼하7:10] ④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여 평안히 살게 해 주고,[삼히7:11] ⑤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지켜 주겠다고 했습니다.[삼하7:16] 반면에 복을 받지 못하는, 다시 말하면 이 땅 위에는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사는 ‘버려진 인생(하나님을 등진 인생)’들이 참 많습니다. 1. 그들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떠났기 때문에 ‘버림받은 것(하나님을 등진 것)’이지요. 오늘 신약성경 본문인 [막6:30-44]에서 두 종류의 버려진 인생(하나님을 등진 인생)이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① 아직 주님을 잘 몰라서 목표 없이 인생을 방황하고 있는 무리들입니다. 오늘 신약성경 본문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 그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다고 했습니다.[양의 습성] ② 또 다른 사람들은, 바로 예수님 곁에 있었지만 예수님에게서 아직도 멀리 있는 사람들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제자들을 향하여 명령했을 때, 제자들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열심히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그 사건의 결과(기적)가 그들의 생각 밖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2. 주님을 열심히 찾고 믿는 자를 도와주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인간에게 자율권이 주어지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섭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섭리에 끝까지 반항하는 자는 도태될 수밖에 없거니와, 그 섭리에 순응하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을 살므로 그가 누린 복(福)은 기적(奇蹟)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주님의 은혜 안에서 당연히 이루어질 일이었던 것이지요. 여러분, 다윗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그와 같이 좀 더 적극적으로 주님의 뜻을 찾아서 열심히 믿고 행하면 우리에게서 그러한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3. 그리스도 안에서 좀 더 적극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생활과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생활을 구분지어 말하고 있습니다. ①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 소망도 없이 산다고 했습니다. [엡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②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생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하나님과 가까워졌습니다.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 자매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전혀 남남이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친형제 간에도 맛보지(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나그네’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우리는 하늘나라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이 됩니다. 그러므로 결코 빈들에서 방황하는 사람이 성도 여러분 중에는 한 분도 없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