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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5-27 16:54
2016년 5월 22일 "심지도 않은데서 거두는 줄로 알았느냐?"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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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도 않은데서 거두는 줄로 알았느냐?
잠 6:6-11, 마 25:26-30

오늘 설교 제목은 ‘심지도 않은데서 거두는 줄로 알았느냐?’인데, 바꾸어 말하면 ‘게으름’에 관한 ‘제목’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이 ‘게으름’이라는 것은 ‘마땅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자기의 편함만을 추구하는 악한 습관’을 말하지요. 그래서 이 ‘게으름’은 분명히 개인적인 것 같은데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이 ‘게으름’을 유도하는(뒷 배경인) 뭔가 ‘존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원수인 사탄 마귀입니다.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태’ 즉 ‘영적 무관심’ ‘게으름’은 자기의 인격을 파멸할 뿐만 아니라 사탄 마귀에게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게으름’은 이렇게 우리의 습관이기도 하고 마귀가 그렇게 우리를 유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마땅히 우리는 이 ‘게으름’ ‘나태함’을 극복해야하겠지요. 그러면 왜 우리가 ‘게으름’을 극복해야 할까요?
1. 자기의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본문 [9-10절]을 보면, 게으른 사람은 누워있다고 합니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고 합니다. 여기서 느껴지는 것은 뭡니까? 예, 바로 ‘자기의 편안함’이지요. 그런데 이 ‘편안함’을 누리려는 마음이 바로 ‘욕심’ 아닙니까? 여러분, 성경이 항상 죄(罪)라고 지적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욕심’입니다. [약1:15]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욕심이 우리를 죽음으로 끌고 간다는 거지요. [약1:14]에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욕심을 부리면 기도에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약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욕심’이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마음’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자야지, 조금만 더 눈을 붙여야지, 조금만 더 팔을 베고 누워 있어야지’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것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모습입니다. 자기만 편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게으름’은 ‘욕심’입니다. 그런데, 나의 주인이 되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자신을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은혜를 아는 사람의 모습이지요. 또 그것이 주님께 감사하는 삶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항상 ‘상처받았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은 상처받을 겨를이 없습니다. 상처를 받을 말이 없다는 것이지요. ‘종’이 들어야할 말을 듣는 건데 그게 왜 상처가 된다고 말합니까? 종은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누구를 위해 살고 있습니까? 내가 주인이라고 말하는 예수님입니까? 아니면 내 욕심 때문입니까?
[갈5:16]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주님을 생각하며 살기에 자기의 편안함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2. 내가 할 일과 우리의 사명을 잃어버리게 하기 때문에 극복해야합니다. 오늘 구약 본문 [6-8절]을 보세요. 잠언서 기자는 게으른 사람에게 충고하기 위하여 개미를 예(例)로 듭니다. 개미는 두목이나 지도자나 감독관이 없어도 여름동안에 부지런히 일하여 겨울철에 먹을 양식을 모은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사명을 주셨고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 중에 사명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사명이 있고, 다 할 일이 있습니다. [고전4:1-2]을 보면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당연히 내게 사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오늘 신약성경의 본문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아놓고 일하지 않고 게으름을 부린 사람의 변명을 들어보십시오. [마25:24-25]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런 그에게 주님이 무엇라 하십니까? [26절]을 보니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합니다. [28절]에서는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고 [30절]에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게으른 사람의 최후’입니다. 여러분, [눅12장]에 보면, 물질만 쌓아놓고 내세(來世)를 준비하지 못한 ‘어리석은 부자의 탄식’을 기억하시지요? 이 ‘어리석은 부자의 탄식’을 결코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할 일을 함으로 죄악인 이 ‘게으름’을 극복합시다.
3. 빈궁(貧窮)하고 곤핍(困乏)하게 하기 때문에 극복해야합니다. 구약성경 본문 [10-11절]을 보세요. 게으른 사람에게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온다”고 합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이 말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가난이 불량배처럼 들이닥치고 빈곤이 거지처럼 달려든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고 반드시 온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한결같이 약속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28:1-2]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말씀대로 살면 복(福)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씀대로 사는 것에 게을러요. 신앙생활에 게을러요. 여러분, 그러면 받을 복이 없습니다. 그리고 설령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어도 다 흩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전대에 구멍이 났다’라고 표현하지요. 구멍이 났으니 수고하여 모아도 다 빠져나갑니다. 도둑맞아서 나가고, 사기 맞아서 나가고, 병원비로 나가고, 남한테 물어주느라 나가고…, 수고는 죽도록 하는데 돈이 모이지를 않습니다. 다른 것이 저주가 아니라 이게 저줍니다. ‘육적인 게으름’도 그렇지만 ‘영적인 게으름’은 우리를 망하게 합니다. 주님 앞에서 부지런하여 게으름을 극복하는 복 받는 성도들(깨어 기도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