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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4-08 15:05
2016년 4월 3일 "웃음을 찾는 사람들"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570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
창 21:1-6, 전 2:1-2

여러분, 모 공중파 TV방송국 프로그램 중에 ‘웃찾사’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 ‘웃찾사’란 프로그램의 제목은 ‘줄임말’인데 바로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란 것이지요. 이 ‘웃찾사’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란 말은 오늘날 현대인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회가 너무 감정이 메마르고 삶에 여유가 없어서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되었다는 것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금 ‘그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자!’라는 뜻에서 프로그램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유머러스한 사람들’이 대환영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웃음을 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들을 찾습니다. 그만큼 현대 사회에 웃음이 메말라 있다는 증거겠지요.
여러분, ‘웃음’은 웃음인데 ‘상황에 따라 웃는 웃음’은 완전히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구약성경 [창18장]의 말씀을 보면, 1년 전 하나님의 사자들이 아브라함에게 와서 “명년 이맘때가 되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을 했을 때 사라는 음식을 준비하면서 장막 뒤에서 이 말을 듣고는 피식 웃었습니다. [창18: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창18: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이미 아브라함의 나이 99세입니다. 자식을 보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였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서 임신을 할 수 있는 생리적 기능이 이미 사라진 오래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이듬해에 자신이 아이를 낳을 것이란 말을 하자 이루어질 수 없다는 생각에 그만 “속으로 웃고” 즉 ‘피식 웃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창21장]을 보면, 그 사라가 또 웃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웃음은 지난 번 웃음과는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작년 이맘때 웃은 웃음은 “속으로 웃고” 즉 ‘어이가 없다는 웃음’이었지만, 지금 웃는 웃음은 ‘기쁨 그 자체’로 웃는 것입니다. 더구나 사라 자신만 웃는 게 아니라 사라가 웃는 이유를 듣는 모든 사람도 웃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창21: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1년 전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했던 말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금 그들에게 기쁨이 넘치는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낳아 이삭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창21: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창21: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린 명령에 따라 난 지 8일 만에 할례도 행했습니다. [창21: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한 것은 ‘이제 이 아이는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 예전에 우리나라도 아이가 태어나서 100일 넘지 못하고 죽는 일이 많아서 100일을 기념일로 정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졌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사라는 죽은 것 같은 자신의 태가 다시 열려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러니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 기쁨에서 중요한 의미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라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은 동일한 모습으로 우리들에게도 역사하십니다.
1. 사라가 웃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지금 기쁨에 넘친 사라의 웃음은 사라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낸 웃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웃게 만드신 것입니다. [창21:1] 말씀대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닫혔던 태가 열린 것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배란이 다시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창21: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 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창21:1]의 표현입니다. 사라는 생리학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라를 “돌보셨고” 사라에게 “행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창21:6]을 보면 사라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우리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말씀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이루어 가신 분도 역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꼭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진실로 웃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지요.
2. 하나님께서 나를 웃게 하시는 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웃게 됩니다. 사라는 자신을 웃게 만드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후 이어 말하기를 “듣는 자가 모두 자신과 함께 웃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창21:6]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사라에게 해 주신 일은 사라 자신만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라를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이 함께 진정으로 기뻐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입니다. 우리 성도가 갖는 간절한 바램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주변 사람들도 함께 기뻐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만(자기만) 즐거운 일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복을 주심으로 나를 지켜보는 자들도 함께 기뻐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복 받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진정 하나님의 복 받는 자가 된다면 여러분으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도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은 나를 웃게 하시고 그리고 나로 하여금 내 주변을 웃게 만들어 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고, 이 메마른 세상 죄악된 세상에서 구별하여 우리를 위로하시고 웃게 하시고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우리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